연수후기

진심으로 전달하는 나의 연수수기

Author
정진우(Sam)
Date
2016-01-19 15:19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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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40대 중반,
쉼 없이 달려온 시간이었고, 열심히 일해 왔지만 그 가운데 늘 아쉬움을 떨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영어’
모든 사람들이 영어에 몰입하고 있는 현실, 왜? 그들은 그리고 나는 영어공부를 하는가? 전 세계에는 6,000여 개의 언어가 있는데 유독 영어에 몰입해야 하는가? 시험에 통과하기 위해, 외국 대학의 입학자격을 얻기 위해, 직업을 얻기 위해...그렇게 영어에 몰입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영어를 잘 할 수 없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중학교 때 I am Tom을 시작으로 고등학교, 대학교, 심지어 대학원까지 영어는 늘 시험을 통해 내 곁에 있었지만, 나는 영어를 잘 할 수 없었다.
읽을 수 있지만 정확하지 않았고,
말할 수 있었지만 제대로 의미를 전달할 수 없었고,
쓸 수 있었지만 완전한 문장을 만들 수 없었다.
외국인과 10분 이상의 대화를 할 수가 없었다. 답답함만 커질 뿐, 내 마음을 전달할 수 없었다.

늘 부족하고 늘 답답한 영어.

10년간의 직장생활 후 잠시 갖게 된 휴식기간,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즐기다 문득, 영어로 내 생각을 잘 말할 수 있다면...하는 막연한 바램으로 가족들의 허락을 받아 필리핀 어학연수를 결심하게 되었다.

주변의 반응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정말 좋은 선택이야. 잘 해봐. 다른 하나는, 필리핀이 뭐야 발음도 엉망인데 이왕이면 호주나 미국으로 가지. 아, 하나 더하자면 뭐 40대가 되어서 어학연수야 그냥 편히 살지라는 걱정 혹은 조롱?.

그러나 어학연수를 결심한 후, 나름 정보를 찾아보고 후기들을 접하면서 ‘Aplus’를 알게 되고, 다른 곳들과는 달리 분위기 자체가 공부하는 분위기라서 굳이 엄격한 룰의 적용이 필요 없다는 평과 선생님들의 수준이 최고라는 평 그리고 ‘바기오’라는 필리핀이면서도 항상 가을날씨를 가진 도시를 알게 되면서 무작정 ‘Aplus’를 향해 어학연수를 출발하게 되었다. 물론, 나이는 많고 그동안 특별히 영어를 준비하지 못했기에 두려움도 함께 가지고 출발하였고, 마닐라공항에 밤늦게 도착한 후 픽업버스에 올라 5시간동안 버스를 타고 바기오로 향하면서 혹시 내 선택이 잘못된 것이라면 어떻게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침이 되어서야 도착한 에이플러스, 훈남(?) 학생매니저 오웬님의 환영을 받고 이곳 생활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대학원을 졸업하고 10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공부, 도착한 다음날부터 엄청난 양의 시험지(이 시험지는 2차 레벨테스트에서 보다 많은 양과 보다 높은 질로 업그레이드되었다)와 해드티처와의 1:1 영어면담을 통한 레벨테스트. 그리고는 다음 날부터 다짜고짜 시작되는 아침 6시50분부터의 프리클래스, 레벨테스트 결과에 따라 모두에게 다르게 주어지는 시간표에 따른 개별수업, 그룹수업 그리고 마무리 저녁 프리클래스.

첫 이주일은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되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나는 그동안 무엇을 했던가?’라는 깨달음을 얻는 시간이라고 하고 싶다.
영어만 써야 한다. 한국말을 해주는 사람이 없다. 설명을 해주지만 알아듣지 못한다. 그러나 알아들어야 한다. 그래야 견딜 수 있다. 영어만 말해야한다. 선생님들과 나는 영어가 아니라면 소통할 수 없다. 선생님과 마주하고 앉아 종일 진행되는 1:1 수업은 내가 아니면 대신 말해줄 아무도 없다. 그냥 말하는 수밖에 없다. 떨어지지 않는 입, 생각나지 않는 단어. 내가 맞게 말하는 확신이 없고, 그동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문법은 말할 때 제대로 사용되지 못한 채 버벅거린다. 아는 단어가 말할 때 기억나지 않는다. Ideology를 상대가 알아듣게 발음할 수가 없다. 아니 다른 단어들도 마찬가지였다. 기침약을 사러 갔으나 살 수 없었고(cough syrup), 바기오 대성당을 가기위해 택시를 탔으나 다른 곳으로 향하는 택시기사를 말릴 수 없었고, 모든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할 때마다 종업원들은 손님 이름을 물어보고 컵에 이름을 받아쓰는데 그들이 알아듣게 내 이름을 발음할 수 없었다. R 발음은 L과 구분되지 않고, F와 P도 문제다. 말만 못하는게 아니라 소리도 제대로 못내왔던 것을 고치려니 혀가 아프다.
저녁이면 다음 날 수업을 위해 과제를 해야 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수업이 되지 않는다. 매일 선생님들과 함께 하는 수업에서 학생은 나 혼자이니까. 저녁 내 과제에 매달리고 발음연습을 하다보면, 녹초가 되어 쓰러져 잠들어버리기를 2주일. Time flies so fast. 난 뭘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 무렵. 커다란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그동안 무엇을 한거지? 한국에서 대체 나는 뭘 배운거지? 그렇게 오랫동안 정규교과에서 학원에서 그리고 시험을 위해 도서관에서 그렇게 열심히 배웠는데도 못했던, 자신 없던 영어. 아, 왜 영어가 안되는건지 이젠 알겠다. 사용하지 않고 그냥 책으로 달달 외우기만 했던 것이 문제였다. ‘사역동사 have, make, let + 목적어 + 원형부정사’, ‘5형식 동사 make, keep, find, consider, drive, deem + 목적어 + 목적보어로 형용사’. 시험 답은 찾을 수 있었지만, 결국 말은 하지 못했던 것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제대로된 발음을 배우지 못했으니, 들리지도 않았던 것이다.

틀려도 좋다. 선생님들은 본능적으로 틀린 부분을 찾아 고쳐주고 다시 연습하게 해주며, 그것도 영어로 해준다. 질문을 하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더듬거리더라도 영어로 해야 했고, 질문에 대한 답 뿐 아니라 잘못된 질문도 고쳐준다. 여기서는 모든 삶이 그리고 모든 것이 영어로, 영어로, 영어로...무엇이든 영어로. 심지어 카페테리아에서 음료 한 병을 사서 마시려고 할 때조차 여기에서는 영어가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었다.

이곳에 온지 석 달. 나는 선생님들의 말을 알아듣는다. 한국말로 생각하고 영어로 번역한 후 말하는 잘못된 습관이 점차 버려지고, 더듬거림도 줄어들고, 내 생각을 말하며 선생님들과 웃고 떠들고 있었다. 밤늦게까지 잠 못자고 에세이를 쓰고 다음날 수업준비를 해가야 했지만, 어느새 저녁에 여유시간이 생기기 시작했다. 일본인 학생들과 주말 외출을 함께 나가 웃고 떠들기도 하고, 필리핀 친구들과 영어로 전화하고 문자를 주고 받으며 하루 하루를 영어로만 살아갈 수 있다. 대단한 변화. 게다가, 나는 내 발음으로 택시를 타고 바기오 대성당(Baguio Cathedral)을 갈 수 있고, 스타벅스에 가서 당당하게 내 이름을 말하고 음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으며, 주말이면 SM에 있는 영화관에 가서 자막 없이 영화를 보며 다른 사람들처럼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아, 그리고 영어로 항의하고 영어로 협상해서 가격을 깎고 요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거지? 그 오랜 기간을 영어문법책을 외우고 동영상강의를 보고 학원을 다니면서도 경험하지 못했던 마법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시내에 혼자 나가는 것이 두렵지 않게 되었고, 매 1:1 수업시간이 길기만 했었는데, 어느 순간 시작하자마자 마침 종이 울리는 것처럼 수업시간이 짧기만 했다. 아직은 서툴지만, 영어로 토론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 나도 할 수 있구나.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것은 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실생활에서 그리고 모든 수업에서 영어만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이곳에서 서서히 영어는 나의 언어가 되어가고 있었다. 물론 아직도 전치사는 어렵고 시제도 능동태, 수동태를 번갈아 쓰면서 좀 더 세련된 영어를 구사하는 것도 어렵다. 그러나 할 수 있다는 믿음, 확신이 생기고 영어를 말하는데 두렵지 않게 되었다는 큰 수확을 얻었다. 게다가 많은 외국인 친구들을 만나 시간을 보내며 하고싶은 말을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은 나를 한껏 들뜨고 기쁘게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석 달의 시간이 지나, 이제는 졸업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싶은 마음도 생겼다. 왜? 영어를 말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게다가 바기오는 택시요금을 내면 동전까지 거슬러주는 친절하고 안전한 곳이니까.

졸업을 앞둔 요즘은 혼자 집을 구하러 다니고, 어제는 세션로드에 있는 변호사 사무실들을 찾아다니며 누가 나를 도와줄 좋은 변호사일지 알아보는 일을 직접, 혼자 해냈다. 영어로 말이다. 그리고 운전면허증을 발급받기 위해 LTO(이곳의 운전면허관리 및 차량등록관리를 하는 관청)에 전화를 해서 필요한 절차들을 문의하였다. 역시 영어로.

놀라운 변화. 놀라운 발견.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만약 이곳에 오지 않았더라면 평생 영어는 어려운 것이고, 외국인을 만나면 더듬거리고 얼굴이 벌개져서 머뭇거리고 살았을 텐데, 지금은 그것이 두렵지 않게 되었다니...물론, 능숙하지는 않다. 그러나 3개월만의 변화는 앞으로의 가능성을 밝게 해주었고 자신감을 주었다는 것이 내게 중요하다.

에이플러스, 지난 기억을 돌아보면 어려울 때마다 늘 힘이되어주던 학생매니저 오웬 늘 든든하게 버팀목이 되어주던 부원장님. 매일매일 부딪히며 심지어 쉬는 시간조차도 혹은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간 자리에서 조차도 티쳐본능을 버리지 못한채 틀린 부분을 고쳐주고 발음을 교정해주려고 애쓰던 선생님들, 늘 학생들의 요구에 귀 기울이며 학생들 편에 서서 일처리를 도와주던 해드티쳐 비너스. 게다가 24시간 입구를 지켜주던 나보다 더 영어를 잘하며 친절하게 이곳생활을 도와주던 가드 아리스톤, 덴버 모두가 내게는 선생님이고 지지자였으며, 이분들 덕분에 나는 새로운 길을 찾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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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사진
내가 이곳에 오기 전에 누군가가 내게 그랬다. 필리핀은 발음이 별로야. 이왕이면 크고 유명한 학원으로 가야지.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유학원을 통해 홍보를 잘하면 유명할 것이고, 크면 복잡할 것이고. 그래서 선택한 에이플러스.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그러나 선생님들이 좋다는 말을 믿고 선택한 이곳. 감히 말하자면 발음?을 걱정하던 사람들은 그것을 지적하고 걱정할만한 사람이라면 그럼 더 영어를 배울 필요가 없을 만큼 원어민 수준으로 영어를 해야 할 것이다. 어학연수가 별 도움이 안된다던 사람들, 아마도 수업을 빠지고 과제를 미루고 혹시 외국생활을 즐기고만 온 사람들은 아닌지...하긴 이곳은 그럴 걱정은 별로 없었다. 세부나 마닐리, 클락 같은 곳하고는 달리 갈 곳도 별로 없고 놀 곳도 별로 없는 그냥 대학교 많고 학생들 많은 교육도시 바기오이니까.

40대의 용감한 도전은 왜 진작 시작하지 못했나, 왜 진작 이런 기회를 몰랐나 라는 아쉬움과 함께 와, 나도 가능한 거였구나...라는 결실을 얻으며 3개월의 의미 있는 시간을 오늘 드디어 마감한다. 아쉽지만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라 더 많이 나아질 수 있는 기회이고 출발이기에 기쁘게 이곳을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선생님들과는 서비스로 주어지는 화상채팅을 통해 계속 만날 수 있고, 계속 영어를 배울 수 있다고 하니, 더 나아질 나의 모습을 기대해본다.